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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후기

본래의 모습으로 살고 싶었던 자유분방한 여자 크루엘라

 

요즘 극장가를 주름잡고 있는 영화 크루엘라를 감상했다.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포스터에서 여자 조커를 연상시키는 엠마 스톤의 살아있는 표정이 너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색적인 분장 속에서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엠마 스톤은 마치 신비로운 인형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내용도 모르고 감상한 영화였고 게다가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넘는 작품이었지만 보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그 이유는 영화 곳곳에 숨어있는 깨알 같은 웃음 포인트와 개성이 다른 두 명의 캐릭터를 너무나도 잘 표현한 엠마 스톤의 연기력이 압권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세상을 보는 눈이 남달랐던 크루엘라는 외모 또한 반은 검은색 반은 하얀색의 머리를 가진 독특한 여성이었다.

 

게다가 성격도 자유분방하고 화끈해서 남들에게 쉽게 주목을 받는 스타일이기도 했다.

 

이처럼 보통사람과 판이하게 달랐던 그녀를 사람들은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외모는 어쩔 수 없지만 성격만이라도 보통 사람들과 같은 선상에서 살게 하고 싶었던 크루엘라의 엄마는 그녀를 평범한 사람과 눈높이가 맞는 에스텔라를 살도록 끊임없이 세뇌교육을 한다.

 

하지만 본인의 끼를 주체할 수 없었던 그녀는 다니는 학교마다 말썽을 부리며 퇴학을 당한다.

 

결국 두 사람은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그녀의 엄마는 절벽에서 떨어져 사망을 한다.

 

 

졸지에 고아가 된 그녀는 엄마의 당부대로 본인의 끼를 숨기고 평범한 에스텔라로 살아가게 된다.

 

거리를 떠돌다가 만난 재스퍼와 호레이스 역시 부모가 없는 고아로서 이들과 함께 에스텔라는 소매치기 활동을 하며 성인이 될 때까지 가족처럼 지내며 성장한다.

 

 

재스퍼는 에스텔라가 소매치기나 하면서 인생을 살기에는 재능이 아깝다는 것을 간파하고 다양한 의상이 즐비한 리버티 백화점으로 취직을 시켜준다.

 

에스텔라는 이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패션 쪽으로 일을 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현실은 청소나 하는 신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에스텔라는 술에 취해 쇼윈도에 전시되어 있던 의상을 자기 마음대로 재단을 해버리고 만다.

 

 

이를 우연히 본 패션계의 거장 남작 부인은 그녀를 자신의 패션회사 직원으로 스카우트를 한다.

 

이곳에서 에스텔라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를 하고 남작 부인에게도 인정을 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 남작 부인이 엄마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에스텔라는 점점 분노의 감정을 싹 틔운다.

 

결국 그동안 잘 억눌러 왔던 자신의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보통 사람과 판이하게 다른 크루엘라로 돌아오고 만다.

 

 

그녀는 엄마를 죽게 한 남작 부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복수를 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예전의 순수하고 선량했던 에스텔라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세상을 향해 분노로 가득 찬 크루엘라만이 그녀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점점 이성을 잃고 과격해져만 가는 그녀가 과연 엄마를 죽게 한 남작 부인에게 시원한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남성보다 여성들들에게 더 환호를 받을 만한 작품이었다.

 

아무리 이 세상이 여성들에게 관대해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 사회는 여성들에게 조신한 모습을 강요하고 있고 이런 사상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팽배한 것이 현실이다.

 

 

평소에 이런 감정을 느끼며 살던 여성분들은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며 본래의 모습으로 살고 싶었던 자유분방한 여자 크루엘라를 보면서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으로 본다.

 

 

또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그 사람의 개성을 무시하고 이상하게 보는 사회의 편견도 이 영화는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왜 남들과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왜 남들과 성격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자신들의 테두리 안에서 배척하려고만 할까?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모든 혁명과 유행은 이런 특이함을 가진 존재가 선두에 서서 이끌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님 모른 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처럼 영화 크루엘라는 단순히 오락영화로만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아까운 작품으로서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이 사회의 풍자극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