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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시즌3 형제복지원 용감한 검사의 추적으로 세상에 드러난 감옥

지난 21일 방송한 꼬꼬무 시즌3 형제복지원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이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수차례 다룬 내용이었지만 꼬꼬무가 재현한 형제복지원 사건은 배우 장현성의 실감 나는 재현과 장도연, 장성규의 조리 있는 이야기로 전개로 정보의 전달과 비판을 모두 조화롭게 담아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1. 형제복지원 사건이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하에 길거리에 보이는 미성년자와 성인을 불법 구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킨 인권유린 사건이다.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이 일어나던 시점 형제복지원의 참혹한 인권유린 문제가 터지자 정권유지에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한 나머지 김용원 검사에 압력을 가한 끝에 수사가 중지가 되었던 사건이다.

 

원래 형제 복지원은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환경 미화 차원에서 부랑인들을 잡아 청소를 하라는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탄생이 되었고 그 뒤 12년 동안 운영되면서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을 했다.

 

2. 시청자들의 분노와 안타까움을 자아낸 생생한 증언

어제 꼬꼬무 시즌3에서 방송한 형제복지원 참사는 그 당시 사건을 조사하던 김 검사와 피해자들의 경험한 생생한 증언으로 시청자들의 분노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영문도 모른체 낯선 남자들에게 납치가 된 많은 피해자들은 수 년동안 감금생활을 하며 평범함을 누리며 살 권리를 송두리째 빼앗겼다.

어린아이 일 때 납치를 당해 현재 50살이 된 피해자는 아직도 그 당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체 방송 도중 서럽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3. 1982년 정연웅 군 실종 

리어카 행상으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면서도 공부를 잘했던 정연웅 군은 1982년 연탄가게 형을 따라 부산역으로 놀러 간 뒤 실종이 되었다. 경찰에 신고를 해봤지만 아는 형과 함께 나갔으면 실종이 아니라 가출이라며 조사 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40년 동안 행방을 모르던 정연웅 군은 50살이 되어서야 가족들과 만나게 되었고 그동안 모르는 사람들에게 납치가 되어 약 5년 동안 갇혀 있었던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아들을 찾아다니던 아버지마저 형제복지원으로 끌려와 함께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어색한 재회를 하게 된 두 사람은 반갑다는 표현도 하지 못한 체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마음을 억누르며 생존을 해야 했다.

 

 

4. 1983년 7살 이혜율 양과 5살 남동생도 실종

정연웅 군이 사라진 1년 뒤인 1983년 7살 혜율 양과 5살 남동생도 실종이 되었다. 이들은 아빠와 이혼한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기차를 탔다가 부산역에서 낯선 남자들에 의해 납치가 되었다.

 

납치한 남자의 정체는 충격적이게도 현직 경찰이었는데 아이들은 설마 경찰이 자신들에게 나쁜 짓을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따라갔다가 이런 봉변을 당한 것이다.

냉동탑차에 실린 아이들은 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불리는 형제복지원으로 끌려서 상상을 초월하는 인권유린을 당하며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5. 거리의 부랑자들을 입소시켜 재활을 한다는 명목

형제복지원은 거리의 부랑자들을 입소시켜 재활을 한다는 명목 하에 무차별로 사람들을 납치했다. 이들이 말하는 부랑자의 기준은 황당하게도 기차에서 졸다가 종점까지 가는 사람, 기차역에서 티비를 보는 사람, 야외에서 술을 마시거나 면도를 하지 못해 수염이 덥수룩한 사람이었다.

6. 형제복지원의 참상

형제복지원은 말만 복지원이지 무고한 사람들을 감옥에 가둬놓고 강제노동을 강요했다. 아이들은 공장에서 장난감이나 신발을 만들었고 어른들은 건물짓는 일을 했으며 이들 모두 죄수처럼 가슴에 번호를 달고 자신의 이름을 박탈당했다.

 

이곳은 수십 채의 건물들이 계단식으로 빼곡히 세워져 있었고 주변은 5미터의 벽으로 둘러싸인 담장과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탈출을 할 수가 없었다.

정연웅 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곳에서 밤만 되면 여자는 물론 남자아이들 까지 성폭행을 당했다며 그날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했다.

7. 용감한 검사의 추적으로 세상에 드러난 감옥 

형제복지원은 1986년 산에서 사냥을 하던 김용원 검사에게 우연희 눈에 띄게 된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에서 약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공사일을 하고 있었고 그들 주변에는 수많은 사냥개와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를 수상히 여긴 김 검사가 미행을 해보니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발에 쇠사슬을 채워 감옥에 가두고 심한 학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용감한 검사의 추적으로 세상에 드러난 이 감옥은 축구장 4배의 크기에 수용인원만 3000명이 넘었고 이들 중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무려 900명이나 되었다.

결국 정식으로 수사를 해보니 형제복지원 안에는 수상한 금고 안에 약 20억이 현금이 들어 있었다. 당시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불법을 자행하던 이들은 무서운 것이 없었고 제대로 된 처벌도 받지 못한 체 사건이 무마가 되었다.

8. 아직도 조사 중인 현재 진행형인 사건

1987년 형제복지원을 운영하던 박 원장은 최종 판결에서 횡령죄만 인정이 되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벌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가벼운 처벌을 받고 나온 그는 또다시 장애인과 정신질환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복지시설을 열어 국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았지만 2016년에 사망을 하게 되었다.

 

당시 형제복지원 실태가 알려졌을 때만 하더라도 피해자들은 자신들에게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사실을 숨기기에 바빴지만 이제는 용기를 내어 증거가 하나둘씩 모아지고 있다.

현재 이 사건은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1호 사건으로 조사가 진행 중인 현재 진형형 사건이기도 하다.